광화문 사냥꾼
백희갤러리 허보리 초대展
2019. 01. 30 - 2019. 02. 26
작가 노트_
오전 8시 45분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입구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한결같이 어두운 양복바지와 허연 와이셔츠, 비슷하게 생긴 자켓을 걸친 채 출근을 한다. 잠시 뒤 점심시간이 되면 무채색의 사람들이 또다시 와르르 밥을 먹으러 나오는 것이다. 1시간 안에 식사를 구겨 넣고, 이를 쑤시며 다시 각자의 일터로 들어간다. 나는 일터에 나와있는 모든 이들이 사냥꾼으로 생각되었다. 우리네 세상이 이렇게 발달하기 전 사슴사냥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원시의 사회가 있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는 돈을 사냥하지만 그 돈으로 산, 팩에 담긴 붉은 소고기를 보면 ‘사냥’이라는 원시적인 개념이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둘째를 낳고 얼마 안되어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할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움집에서 젖을 주는 여자. 그는 창을 매고 사슴을 잡으러 나가는 남자 정도로 느껴졌다. 잘 다려진 와이셔츠와 양복바지. 그리고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맨 넥타이는, 피가 난무한 사냥터에서 창과 칼로 무장한 사냥꾼의 모습이리라. 그가 사냥을 나간 사이 나는 벗어 던진 매일의 와이셔츠를 빨고 다리고, 마트에 가서 과일과 고기를 산다.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심사숙고하여 고른 구이용 소고기의 아름다운 마블링은 내 눈을 즐겁게 한다. 그 마블링에서 나는 미적 희열을 느꼈다.
정육을 하다 보면 소의 부위별로 보여지는 단면이 매우 다른데 그것의 조형미는 한 폭의 멋진 추상화 같았다. 나는 잦은 세탁으로 목 주위가 낡아 버리게 되는 와이셔츠, 유행이 지난 넥타이나 양복들을 직장인들에게서 수거하여 무기를 만드는 작업을 했었는데, 양복에서 유일하게 화려한 부분인 넥타이에는 아름다운 고기의 마블링을 수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를 놓는 일은 마치 매일 없어지는 밥을 만드는 일이나 매일 빨아야 하는 속옷이나 그런 매일의 지루한 노동같은 죽도록 단순한 일이었다. 그런 단순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패턴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부와 명예, 그리고 마음속 깊이 자리한, 이루지 못한 꿈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고생한 날 저녁, 잘 구운 한점의 고기가 목구멍에서 사라지듯이 매일의 출근, 매일의 살림, 매일의 노동은 그렇게 하루하루 모래바람처럼 날아가 버리고 있다. 나의 자수라는 작업방식이 이러한 모래바람을 기억하는 일이 되었으면 한다.
작가 약력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