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갤러리 이혜인 초대展
Stroll (산책)
2024. 09. 11 - 10. 15
<12월 오후, acrylic on canvas, 45.5 x 53 cm, 2023>
<결 15, acrylic on canvas, 17.9 x 25.8 cm, 2024>
<작가노트>
집을 나서 느껴지는 정취들을 수집해본다. 화단에 비친 햇살은 마음을 녹이고, 미지근한 바람은 생각을 환기시킨다. 때마다 적시에 피어나는 담벼락의 꽃들과 바람결에 나부끼는 잡초들이 내 눈 앞에 반짝이고 휘적거린다. 매일 걷는 똑같은 길에서 어제보다 한 겹 더 피워낸 잎사귀, 키가 조금 더 자란 풀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반복되는 일상을 비집고 나온 생명력을 느껴본다.
나는 간직하고 싶은 일상의 순간이자 누구에게나 한번 쯤 스쳐갔을 주변의 풍경을 그린다. 매일 보는 장면, 그리고 그 하루를 채운 바람과 모양과 잔상 같은 것.
작업에 표현 된 이미지는 내가 살아가는 보통날에 대한 표상이다. 풍경의 요소들은 각자의 속도대로 자기만의 형태와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게 마주치는 것들의 형상과 배열을 수집하고 활용하길 반복한다. 특정 날씨나 계절감이 주는 분위기, 그리고 주관적인 감정을 입혀 몇 가지의 배색을 활용해 의도적으로 캔버스 프레임 안에 담아본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aura)’ 개념에 대해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이라 나타냈다. ‘어느 여름 날 오후, 휴식 상태에서 산이나 나뭇가지의 아우라를 숨쉰다’는 그의 표현과 일치한다. 이 순간적이고도 시각적인 잠깐의 유희를 경험하고, 눈앞의 장면과 감정의 연결고리를 찾아 캔버스에 남긴다. 가깝고도 면밀히 들여다보던 익숙한 장면은 화면에 재현하는 과정을 거치며 대상화된다. 때론 구체적이기도하고, 때론 모호하고 생경하다.
작업방식에 있어서 칠하는 행위는 그림의 중추가 되어, 형상과 색채로 남는다. 색 면의 덩어리들과 붓질로 치환된 이미지는 대상의 움직임을 따라간 흔적이다. 아주 보편적이었던 것을 거리를 둔 시선으로 바라보며, 평범한 산책은 창작을 위한 긴밀한 접점이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한 회화적 기록방식은 다시 나의 삶에서 새롭게 유영하는 에너지가 된다.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일상. 흘러가는 삶의 틈 사이에 오늘도 산책은 나에게 유의미한 경험이 된다.
이혜인
<약력>
2013 홍익대 회화과/예술학과 졸업
개인전
2024 호흡하는 오늘, 갤러리 도스
2024 프롤로그(Prologue), 갤러리 젬가든
2022 계절의 단편, 꼴라보하우스 도산
2021 ’작가의 방’, 오픈월 기획전_ 현대백화점 미아점
그룹전
2024 영역의 모부(謀部) part.2_ 아르떼위드 청담
2023 도시산책자, 큐아트스페이스
2022 호호아트페스티벌, 꼴라보하우스 도산
2022 교감, 아미디갤러리 신촌
2012 Rehearsal, JH 갤러리
2012 동아시아 미술 페스티벌, 갤러리 스카이연
2011 語聆敷靈, 갤러리 팔레 드 서울
2011 홍익대 회화과 학사청구전, 홍익대 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