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갤러리 현아리 초대展
흘러간 뒤 남은 것
2026. 03. 04 - 03. 31
<오렌지빛 의자, 72.7 x 90.0 cm, oil on canvas, 2024>
작가노트
음악대학 시험에서 한 학생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1분 30초라고 한다. 두 곡이면 3분. 10년을 준비했어도 3분, 평생을 준비했어도 3분이다. 면접도 그렇고, 첫 만남도 그렇다. 준비하는 시간은 길고 길어도, 정작 중요한 순간은 너무 짧다. 결국 우리는 매일 ‘그 순간’을 위해 나머지 모든 시간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선물상자를 만들었다.
선물상자는 누군가에게 건네지는 한 순간의 기쁨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는 고민하며 고르고 포장하던 길고 조용한 시간들이 함께 들어 있다. 겉으로는 완결된 형태지만,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쌓여 있다. 포장을 풀지 않은 채 놓여 있는 선물상자. 그것은 매일 우리에게 건네지는 ‘오늘’이기도 하다.
나의 작업은 중심에 놓인 대상만을 그리기보다, 그 주변에 머무는 풍경과 기척, 스쳐 지나갈 법한 배경에 더 오래 시선을 둔다. 주목받는 순간이 아닌, 그 순간을 둘러싼 수많은 장면들. 시각적 관찰과 내면의 독백이 교차하는 지점을 표현하고자 한다.
캔버스에는 놓여진 선물상자가 등장하기도 하고, 무언가 남겨진 자리만이 나타나기도 한다.
관람자는 자신만의 속도로 그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단 한 번의 빛나는 순간보다 그 뒤편에 놓인 시간들을, 그리고 ‘오늘’을 함께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와 주목받지 못한 장면들 또한 각자의 삶 속에서 충분한 의미와 밀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지나쳐 온 시간들 역시 매일 우리 앞에 선물처럼 놓여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지나온 시간이 다가올 시간을 바꾸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